2019년 3월 31일 일요일
교회의 승리
2019. 4. 1 (월요일) 사순절 제23일
교회의 승리
마태복음 16장 21~28절 / 331장 영광을 받으신 만유의 주여
예수님은 “...내가...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라는 말씀으로 교회가 받을 공격과 교회가 얻을 승리를 예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여, 내 교회는 공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내 교회를 대적하는 악의 세력은 이제는 더 이기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원수가 나를 사망에 가두어 둘 수 없고 나는 부활할 것이기 때문이다.
베드로여, 사탄과 그의 수하에 있는 귀신들과 그들의 사주를 받는 그 어떤 사람도 죽음을 최종 병기 삼아 내 교회를 지배하고 가두고 침묵하게 만들 수 없다.
그 어떤 고난에도 불구하고 내 교회는 살아남을 것이고 또한 전진할 것이며 부활할 것이다.”
예수님의 예고대로 베드로를 비롯한 수많은 교회의 청지기들은 교회를 위해 고난을 받았고 심지어 순교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시대의 교회와 곧 교회의 청지기들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교회를 위해 자기 목숨을 읽을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마16:24).
그렇지만 반드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다시 오실 것입니다(마16:27).
그 때에 예수님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교회는 공중으로 끌어올림을 받아 예수님의 아내의 자격으로 예수님을 맞이하고 상을 받겠지만 교회의 대적들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연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교회가 승리할 것을 믿고 예수님의 교회를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특별히 자신이 소속된 교회의 청지기가 되어 교회를 위한 희생과 고난을 기꺼이 받으십시오.
교회의 초석
2019. 3. 30 (토요일) 사순절 제22일
교회의 초석
미태복음 16장 13~20절 / 329장 주 날 불러 이르소서
하나님은 예수님의 정체를 베드로에게 계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곧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신 것을 알게 되었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속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마16:18-19).” 라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여, 그대의 이름은 반석을 의미하는 것인즉 그대의 본분은 반석이 되는 것이다.
그대는 내가 누구인지를 처음으로 안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대는 나를 따르는 사람들로 이루어지는 성도의 교제 곧 교회를 세우는 건물에 처음 놓인 돌이다.
베드로여, 장차 그대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다 함께 들어오게 될 천국의 문을 열어 주는 청지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지혜로운 관리자가 되고 안내자가 되어 이제 자라나기 시작하는 어린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명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
베드로여, 그대는 중요하고 무거운 책임을 맡게 될 것이다.
그대는 전체 교회의 번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결단을 내리게 될 것이다.
그대가 내리는 결정은 대단히 중요하여서 사람들의 영혼을 지배하는 힘이 될 것이다.”
예수님의 약속과 예언대로 베드로는 교회의 초석과 천국의 문을 열어주는 복음의 청지기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은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림으로 교회의 초석과 복음의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벧전2:4-8).
특별히 우리가 소속된 교회에서 주춧돌이 될 뿐만 아니라 복음의 청지기로 살아갑시다
2019년 3월 28일 목요일
왜 의심하는가?
2019. 3. 28 (목요일) 사순절 제20일
왜 의심하는가?
미태복음 14장 22~33절 / 546장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예수님은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는 말로 베드로를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에 의하면 베드로의 문제는 의심하는 것이었습니다.
‘의심하다’는 ‘나누어진 마음을 갖고 있다’입니다.
그렇다면 ‘믿다’는 ‘나누어지지 않은 마음을 갖고 있다’입니다.
예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나누어지지 않았을 때, 곧 믿음이 컸을 때, 베드로는 바람불고 물결치는 바다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나누어졌을 때, 곧 믿음이 작아졌을 때, 베드로는 바다 속으로 빠져갔습니다.
이 지점에서 예수님 제자 됨의 의미가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큰 믿음의 때에는 ‘물 위로 걷는 것’과 같은 예수님의 ‘전권’에 참여하고, 작은 믿음의 때에는 ‘물속으로 빠져 가는 것’과 같은 ‘고난’에 참여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제자의 의무 수행을 위협하는 것은 결코 ‘고난’이 아니고 ‘작은 믿음’ 곧 ‘의심’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고난을 당할 때, 예수님께서 시선을 고정하고 ‘주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닥친 고난으로 인해 믿음이 작아질 때,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을 응시하고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소리질러야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제자가 고난당하는 것을 분명히 보시고 그들에게 오십니다.
예수님은 고난당하는 자기 제자에게 말씀하시고 인도하시고 고난에서 구원하십니다.
2019년 3월 26일 화요일
생명의 구원자
2019. 3. 27 (수요일) 사순절 제19일
생명의 구원자
미태복음 14장 13~21절 / 171장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이 사건이 해 저문 시간에 “푸른 잔디”(막6:39)로 덮인 “빈들”에서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 사건의 배경은 이스라엘의 유월절 절기입니다.
하나님은 유월절 오후 해질 무렵(출12:6)부터 애굽의 모든 처음 난 것을 죽이셨지만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집의 모든 처음 난 것은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벳새다 빈들에서 무리를 먹이신 광경을 상상해 보십시오.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선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마14:19)” 예수님은 그 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 광야에서 사십년 동안 만나를 먹이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유월절 식사 광경을 상상해 보십시오.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받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6-28).”
예수님은 우리를 우리 죄와 죄의 심판에서 구원하는 하나님의 “유월절 어린양”(벧전1:19)이시고 “생명의 떡”(요6:35)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예수님 재림의 날까지 전합니다.
2019년 3월 25일 월요일
천국의 비밀
2019. 3. 26 (화요일) 사순절 제18일
천국의 비밀
마태복음 13장 10~17절 / 492장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예수님에 의하면 천국은 하나님의 왕적 통치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시는 동안 인간의 병과 장애와 죽음과 가난과 마귀를 통치하셨고, 그 모든 악에서 인간을 구원하셨습니다.
특별히 이 모든 악의 근원인 인간의 죄를 대신 담당하셨고,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그 죄의 벌을 대신 받으셨으며 마침내 그 모든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예수님의 왕적 통치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무력으로 인간의 체제를 전복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와 죄의 세력,
인간의 몸과 마음의 연약함과 병과 죽음,
마귀와 귀신들의 권세와 폭력을 통치하시고,
인간을 그 모든 악에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복음이 천국의 비밀입니다(롬16:25-26).
하나님은 이 세상 만민이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독생자를 이 세상 만민을 위한 제물로 바치셨고 예수님은 이 세상 만민의 죄를 담당하셨고 이 세상 만민이 받아야 할 죄의 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롬5:8).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저절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해졌기 때문입니다.
행여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하나님께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하여 자기들의 눈을 감고 귀를 닫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비밀, 곧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아는 것을 허락받은 사람은 행복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그리스도와 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의 죄와 죄의 세력, 몸과 마음의 연약함과 병, 마귀와 귀신들, 이 모든 악에서 비롯된 삶의 불의와 부조리와 악에서 구원하십니다.
2019년 3월 24일 일요일
하나님의 한 백성
2019. 3. 25 (월요일) 사순절 제17일
하나님의 한 백성
마태복음 11장 16~19, 25~30절, / 540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 나라의 본 자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8:12).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셨고 하나님 나라의 복을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자신의 출생지로 삼으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나라의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고, 예수님이 가져오신 하나님 나라를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친구들이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않는 마음 닫힌 옹고집 아이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의 멸망을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고 말씀하시면서 세상 모든 개인을 하나님 나라의 새 자손으로 초청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초청을 수락한 사람들을 토대로 하나님 나라의 새 자손 곧 교회를 세우실 것입니다(마16:18).
교회는 하나님이 새롭게 택하신 족속이고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교회는 거룩한 나라이고 하나님의 소유된 하나님의 새 백성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본 백성을 완전히 버리신 것은 아닙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면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만족하실 만큼 교회가 세워지면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롬11:25).
그 때가 되면 하나님 나라의 본 백성과 새 백성이 ‘하나님의 한 백성’이 되어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것입니다(엡2:18).
그때까지 교회는 마음 닫힌 옹고집 아이같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처신해야 합니다.
늘 하나님의 초청과 당부를 수락하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소명을 다 해야 합니다.
2019년 3월 22일 금요일
복이 있는 그리스도인
2019. 3. 23 (토요일) 사순절 제16일
복이 있는 그리스도인
미태복음 11장 2~11절 / 445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세례 요한은 옥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님이 과연 “오실 그 이” 곧 예수그리스도이신지 여쭈었습니다.
왜냐하면 세례요한은 그리스도를 심판자로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도끼로 찍어 불에 던지는 농부나 쭉정이는 불에 태우는 농부의 비유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마3:10,12).
하지만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 같이 고생하며 기진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들이 사는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시면서 그들과 어울리셨고 그들을 가르치셨고 그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으며 그들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머9:36).
그리고 예수님 때문에 옥에 갇힌 세례 요한을 꺼내 주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의 그리스도 약속들과 관련된 낱말들을 사용하셔서 자신이 성경이 예언한 “오실 그 이” 곧 그리스도이신 것을 설명하셨고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편견과 오해 때문에, 예수님을 위한 고난 때문에 실족하지 않도록 조심해야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진리를 알고, 예수님을 위한 고난을 오래 참아야 합니다.
우리는 욥의 인내와 결말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깝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약5:7).
2019년 3월 21일 목요일
목자 그리스도인
2019. 3. 22 (금요일) 사순절 제15일
목자 그리스도인
미태복음 9장 35~10장 42절 / 505장 온 세상 위하여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목자 없는 양처럼 내팽개쳐져 고통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의 목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약한 사람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셨고,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셨고,
상처 입은 사람들을 싸매 주셨고,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을 찾아가셨습니다(겔34:4,16).
예수님은 자신의 열두 제자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보내셔서 사람들의 목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을 가르치고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사람들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돌볼 더 많은 목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가서 모든 종족의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종족들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주고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지킬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마28:18-20).
그들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고 귀신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그리스도인들은 권능을 받아 예수님의 능력 있는 증인이 될 것입니다(행1:8).
성령 안에서 열정적으로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하며 성찬을 나누고, 성령의 사랑으로 서로 교제하고 서로의 필요를 돌보고, 성령의 권능으로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천국 윤리를 가르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게 될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2019. 3. 21(목요일) 사순절 제14일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미태복음 9장 18~26절 / 471장 주여 나의 병든 몸을
예수님은 사람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셨고 병을 짊어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믿기만 하라”는 말은 지속적인 태도와 행동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일회적인 믿음이 아니라 지속적인 믿음,
흔들리지 않는 믿음,
변하지 않는 믿음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이 믿음은 환자의 믿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꼭 환자의 믿음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지인들(마8:5-13,9:1-8),
친구들(마8:14-15),
친척들,
부모(마9:18-26)의 믿음을 보시고 환자를 치료하십니다.
물론 예수님은 일방적인 사랑으로 환자를 치료하시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 치료에 있어서 믿음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예수님께 나아가 절하며 예수님을 경배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병 낫기를 간절히 끈질기게 간청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공적인 장소에서 말과 행동으로서 자신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며 병 낫기를 간청합니다.
어떤 장애 속에서도 예수님을 만날 기회를 만들고 상황이 악화되어도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의 치유를 기도하고 기대하고 기다립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마10:1).
그러므로 한결같은 믿음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은 병과 모든 악한 것을 고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더 많이 기도할수록 더 많이 치료받고 치료할 것입니다.
2019년 3월 19일 화요일
귀신을 쫓아내기
2019. 3. 20 (수요일) 사순절 제13일
귀신을 쫓아내기
미태복음 8장 28~34절 / 348장 마귀들과 싸울지라
성경에는 사탄의 수하에 있는 귀신들이 나옵니다.
귀신들은 사람들을 사로잡아 완전히 부릴 수 있는 영적 존재입니다.
예수님에 의하면 귀신들은 더럽고 나쁜 도둑입니다.
사람들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더럽히고 약탈하고 파괴하고 멸망시키기 때문입니다(요10:10).
귀신들은 사람의 몸을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게 할 수 있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간질로 심히 고생하게 하고 자주 물과 불에 넘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듣거나 보거나 말하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쇠사슬을 끊고 쇠고랑을 깨뜨릴 만큼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할 수 있고, 자해와 자살을 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성격을 매우 사납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을 위협하거나 해코지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의 정체를 알았습니다.
자신들을 괴롭히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귀신들은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께 달려와 예수님을 위협했고, 예수님께 저항했지만 결국에는 예수님의 말씀에 복종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들의 정체를 아셨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이고 사람들 속에 자신의 모습을 숨길 수 있지만,
예수님은 구신들을 알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귀신을 쫓아낼 권세와 권능을 주셨고, 그리스도인을 통해 귀신을 쫓아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믿음과 기도의 사림이 되어야합니다.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예수님 이름으로 귀신을 대적하고 쫓아내야 합니다.
2019년 3월 18일 월요일
진짜 우정
2019. 3. 19 (화요일) 사순절 제12일
진짜 우정
마태복음 7장 1~5절,18장15~20절 / 620장 여기에 모인 우리
예수님은 형제 곧 신앙의 동료를 비판하는 것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티와 들보의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들을 비판하기 전에 신앙의 동료를 거울삼아 자신을 먼저 비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형제의 눈 속에 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기 눈 속에 들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본 것은 형제의 티가 아니라 자신의 들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의하면 비판은 “거룩한 것” 혹은 “진주”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동료를 비판하는 것은 그에게 거룩한 것을 혹은 진주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판은 누군가에는 최고의 선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판할 때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만약 비판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혹은 비판을 자신에 대한 최선의 배려와 사랑과 선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우리의 비판을 발로 밟고 돌이켜 우리를 찢어 상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형제의 부족함과 실수와 죄가 보이면 형제를 거울삼아 먼저 자신을 살핍시다.
형제의 비판을 고마움으로 수용하고 뉘우칩시다.
실수나 죄를 저지른 형제를 찾아가 겸손과 사랑으로 권고하고 그가 뉘우치면 용서합시다. 마태복음18장 15절에 의하면 권고의 목적은 형제를 얻는 것입니다.
2019년 3월 17일 일요일
퇴임 후 산골로 간 이재철 목사 "거침 없이 나를 버려달라"
“여러분은 지금부터 이재철을 거침없이 버리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새로운 차원의 은혜를 원하신다면 이재철을 버리시되, 적당히가 아니라 철저하게 버리셔야 합니다.”
지난해 11월18일 이재철(70) 목사는 퇴임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100주년기념교회의 교인 수는 1만3000명이었다. 허울뿐인 명목 교인 수가 아니라 실질적인 출석 교인 수다. 자신이 개척한 교회에서 13년4개월 동안 담임목사를 따르던 교인들에게 그는 “나를 철저하게 버려달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그리고 자신의 뒤를 이어 교회를 책임질 ‘4인 공동 담임목사들’에게 힘을 실어 줄 것을 간곡하게 요청했다. 퇴임 설교가 끝나고 이 목사는 교인들과 작별했다. 큰 교회를 일군 담임목사들이 퇴임식 때 관행적으로 받는 수억 내지 수십억 원에 달하는 전별금도 없었다.
이재철 목사는 “한반도 어느 곳이든 평당 10만 원짜리 땅이 나오는 곳을 생의 마지막 정착지로 삼아서 보내겠다. 굳이 ‘평당 10만 원’이라고 특정한 이유는 그 정도 가격이라야 저희 부부 형편에 맞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조촐한 퇴임식을 마치고 교회를 나서는 이 목사를 배웅하며 교인들은 가슴으로 울었다. 그가 걸어왔고, 또 걸어갈 걸음걸이가 자신들이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는 길에서 ‘드물고도 귀한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었다.
이 목사는 지인들과 작별 인사를 마치고 서울을 떠났다. 차를 타고 경상도 김천의 산중턱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1시30분이었다. 이 목사 부부는 김천시 웅양면의 해발 560m 산동네에 ‘평당 10만 원짜리 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집을 지었다. 처음에는 컨테이너 2개 동을 갖다 놓고 살 참이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교회 교우 중에 건축설계사가 있었다. 그가 “제 아내도 투병 중이다. 암 투병 중인 목사님이 산골의 추운 집에서 살면 어떡하느냐”며 외풍이 없는 집을 설계해 주었다. 이재철 목사는 2013년 암 수술을 한 뒤 방사선 치료를 31차례 받은 바 있다. 집의 시공 비용은 물론 이 목사 부부가 댔다.
지난해부터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이재철 목사는 몇 번이나 거절했다. “나는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일 뿐”이라며 조용한 마무리를 다짐했다. 그렇다고 그냥 보내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그가 길어 올리는 ‘영성의 울림’이 우리의 아픔을 적시고, 우리의 목마름을 적시고, 우리의 삶을 적셔주기 때문이었다. ‘삼고초려’를 거듭한 끝에 결국 거창의 산골로 내려갔다.
15일 김천구미역에서 1시간 가까이 차를 달렸다. 진눈깨비가 내렸다. 굽이굽이 산골짜기였다. 산 중턱에 자리한 마을 어귀에는 500년 된 느티나무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40가구가 사는 이곳에서 이 목사 부부는 ‘마을 주민’으로 살고 있었다. 마을 회의에도 꼬박꼬박 참석하고, 동네 주민들과 왕래하며 생활했다. 이 목사의 집에는 담벼락도 없었다. “마을 사람 속으로 녹아들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재철 목사에게 뒤늦게 물었다. 왜 자신을 거침없이 버리라고 했는지.
이 목사에게 이런 식의 ‘자기 버림’은 처음이 아니다. 1988년 서울 정신여고에서 주님의교회를 개척해 출석 교인 3200명의 묵직한 교회로 키운 뒤에도 “딱 10년만 하겠다”는 첫 약속을 지키고 담임목사직을 내려놓았다. 스위스 제네바의 한인교회에 가서도 그랬다. 3년에 걸쳐 미자립 교회를 자립 교회로 탈바꿈시킨 뒤에 이 목사는 거침없이 교회를 떠났다. 자기 버림의 뿌리를 묻자 이 목사는 책장에서 성경을 꺼냈다. 요한복음 16장7절이었다.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기 직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해사(성령)가 너희에게 오시지 아니할 것이오,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이 말끝에 이 목사는 “1류 도공과 3류 도공의 차이가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이 목사는 산골에 내려와서 쓴 자작시를 한 편 보여주었다. 제목이 ‘바람’이었다. 그 시는 거창의 산골에서 산과 나무와 대숲 소리로 자신을 관통하며 쉼 없이 불어대는 ‘하나님의 숨결’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목사는 “내가 100주년기념교회 목회를 안 했거나, 은퇴 후에 합정동 살던 집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이렇게 하늘과 땅을 되찾는 인생의 마무리를 할 수 있었을까. 그걸 생각하면 참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삶이 ‘모래시계’라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산을 내려오는 길, 이재철 목사의 자작시 '바람'을 꺼내 읽었다. 거기에는 '거침 없이 버려본' 이가 노래하는 버림 이후의 영성이 오롯이 흘렀다. 그것은 바람보다 거세고 , 바람보다 깊고, 바람보다 고요한, 그런 바람이었다.
바람
이재철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하고,
로트레아몽은
좌절과 절망을 노래했지
하지만 나는,
바람이 불지 않는 날에도
바람이 분다
그래서 오늘도 산다
바람,
내
생명의 근원
지혜의 숨결
(2019년 1월 11일)
[출처: 중앙일보] 퇴임 후 산골로 간 이재철 목사 "거침 없이 나를 버려달라"
지난해 11월18일 이재철(70) 목사는 퇴임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100주년기념교회의 교인 수는 1만3000명이었다. 허울뿐인 명목 교인 수가 아니라 실질적인 출석 교인 수다. 자신이 개척한 교회에서 13년4개월 동안 담임목사를 따르던 교인들에게 그는 “나를 철저하게 버려달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그리고 자신의 뒤를 이어 교회를 책임질 ‘4인 공동 담임목사들’에게 힘을 실어 줄 것을 간곡하게 요청했다. 퇴임 설교가 끝나고 이 목사는 교인들과 작별했다. 큰 교회를 일군 담임목사들이 퇴임식 때 관행적으로 받는 수억 내지 수십억 원에 달하는 전별금도 없었다.

이재철 목사의 거창 집에는 담벼락이 없다. 대신 널따란 뜰을 마련했다. 날이 따뜻해지면 마을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기 위한 공간이다. 송봉근 기자
이재철 목사는 “한반도 어느 곳이든 평당 10만 원짜리 땅이 나오는 곳을 생의 마지막 정착지로 삼아서 보내겠다. 굳이 ‘평당 10만 원’이라고 특정한 이유는 그 정도 가격이라야 저희 부부 형편에 맞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조촐한 퇴임식을 마치고 교회를 나서는 이 목사를 배웅하며 교인들은 가슴으로 울었다. 그가 걸어왔고, 또 걸어갈 걸음걸이가 자신들이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는 길에서 ‘드물고도 귀한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었다.
이 목사는 지인들과 작별 인사를 마치고 서울을 떠났다. 차를 타고 경상도 김천의 산중턱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1시30분이었다. 이 목사 부부는 김천시 웅양면의 해발 560m 산동네에 ‘평당 10만 원짜리 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집을 지었다. 처음에는 컨테이너 2개 동을 갖다 놓고 살 참이었다.

암투병 중인 이재철 목사를 위해 교인(지음재 아키텍츠 이재성 대표)이 설계한 집은 '동굴 수도원'을 본딴 것이라고 한다. 돌로 된 집에, 입구도 동굴처럼 옆으로 나 있다. 송봉근 기자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교회 교우 중에 건축설계사가 있었다. 그가 “제 아내도 투병 중이다. 암 투병 중인 목사님이 산골의 추운 집에서 살면 어떡하느냐”며 외풍이 없는 집을 설계해 주었다. 이재철 목사는 2013년 암 수술을 한 뒤 방사선 치료를 31차례 받은 바 있다. 집의 시공 비용은 물론 이 목사 부부가 댔다.
지난해부터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이재철 목사는 몇 번이나 거절했다. “나는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일 뿐”이라며 조용한 마무리를 다짐했다. 그렇다고 그냥 보내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그가 길어 올리는 ‘영성의 울림’이 우리의 아픔을 적시고, 우리의 목마름을 적시고, 우리의 삶을 적셔주기 때문이었다. ‘삼고초려’를 거듭한 끝에 결국 거창의 산골로 내려갔다.
15일 김천구미역에서 1시간 가까이 차를 달렸다. 진눈깨비가 내렸다. 굽이굽이 산골짜기였다. 산 중턱에 자리한 마을 어귀에는 500년 된 느티나무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40가구가 사는 이곳에서 이 목사 부부는 ‘마을 주민’으로 살고 있었다. 마을 회의에도 꼬박꼬박 참석하고, 동네 주민들과 왕래하며 생활했다. 이 목사의 집에는 담벼락도 없었다. “마을 사람 속으로 녹아들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재철 목사에게 뒤늦게 물었다. 왜 자신을 거침없이 버리라고 했는지.

이재철 목사는 "사람이 나이가 들면 갈림길에 서게 된다. 그건 겸손과 교만의 갈림길이다. 산골의 이 거대한 자연이 저를 고개 숙이고 겸손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송봉근 기자
- 질의 :퇴임 설교에서 왜 “이재철을 거침없이 버리라”고 했나.
- 응답 :“교회를 개척한 담임목사가 거침없이 떠나가는 ‘자기 버림’이 없으면 어찌 되겠나. 결국 걸림돌이 된다. 일평생 자신이 헌신하고 섬기던 교회에 걸림돌이 되고 만다. 자신이 섬기던 교인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일. 그보다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나.”
이 목사에게 이런 식의 ‘자기 버림’은 처음이 아니다. 1988년 서울 정신여고에서 주님의교회를 개척해 출석 교인 3200명의 묵직한 교회로 키운 뒤에도 “딱 10년만 하겠다”는 첫 약속을 지키고 담임목사직을 내려놓았다. 스위스 제네바의 한인교회에 가서도 그랬다. 3년에 걸쳐 미자립 교회를 자립 교회로 탈바꿈시킨 뒤에 이 목사는 거침없이 교회를 떠났다. 자기 버림의 뿌리를 묻자 이 목사는 책장에서 성경을 꺼냈다. 요한복음 16장7절이었다.

이재철 목사의 자택에 놓여 있던 십자가. 서울 양화진에서 전지 작업할 때 떨어진 나무로 만든 십자가다. 송봉근 기자

1998년 주님의교회 10년 목회를 마치고 스위스로 떠나기 직전에 찍은 이재철 목사와 정애주 사모의 사진이 거실 책장에 놓여 있었다. 송봉근 기자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기 직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해사(성령)가 너희에게 오시지 아니할 것이오,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 질의 :무슨 뜻인가.
- 응답 :“예수님께서도 떠나셨다. 떠남이 제자들에게 더 유익하다고 하셨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예수님이 떠나가야 비로소 제자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마련된다고 보았다. 하물며 담임목사가 퇴임 후에도 교회에 머물면 어찌 되겠나. ‘원로목사’라는 이름으로 계속 머물면 그 교인들에게 유익하겠나, 아니면 불이익을 주겠나. 답은 명약관화하다. 퇴임하면 거침없이 떠나야 한다.”
- 질의 :그런 사례가 많지는 않다. 교회가 클수록 원로목사로 남아서 ‘상왕(上王) 노릇을 하거나, 심지어 자식에게 교회를 세습하기도 한다. 왜 그런가.
- 응답 :“‘진정한 버림’을 모르기 때문이다. 왜 버려야 하나. 버려야만 우리가 얻기 때문이다. 버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가진 게 ‘전부’다. 시간이 지나면 썩게 마련이다. 그러나 버려본 사람은 안다. 버리면,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것을 갖게 된다. 그래서 버려본 사람이 또 버리게 된다.”

산골에 마련한 이재철 목사의 집은 책장이 방과 거실 사이의 벽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목사는 100주년기념교회 담임을 맡을 때도 자신의 월급을 교인들에게 매달 공개했다. 담임목사와 부목사의 월급 차이도 불과 10여 만원 수준이었다. 송봉근 기자
이 말끝에 이 목사는 “1류 도공과 3류 도공의 차이가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 질의 :그 차이가 뭔가.
- 응답 :“둘 다 진흙으로 그릇을 빚어서 가마에 집어넣는다. 그런데 1류 도공과 3류 도공은 버리는 개수에서 차이가 난다. 1류 도공은 정말 뛰어난 걸 얻기 위해 끊임없이 버린 사람이다. 사람들은 빼어난 작품 한 점만 본다. 그러나 그 작품 뒤에는 수많은 깨어짐의 과정, 수많은 버림의 과정이 있었던 거다.”
- 질의 :사람들은 ‘버림’을 힘들어한다. 왜 그런가.
- 응답 :“그게 다가 아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걸 일종의 ‘종잣돈’이라 생각한다. 그걸 잃으면 모두 잃는다고 믿는다. 그런데 막상 버려보면 알게 된다. ‘새로운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이 열린다. 버려야만 새로운 경지로 갈 수 있다. 그리스도교의 영성도 도공의 그릇과 똑같다.”

기독교계에서 내실 있는 출판으로 유명한 홍성사 대표를 맡고 있는 정애주 사모는 이재철 목사의 아내이자 신앙의 길벗이다. 송봉근 기자
- 질의 :서울을 버리고 거창에 왔다. 도시를 버리고 산골에 왔다. 무엇이 열렸나.
- 응답 :“대나무숲의 파도 소리다. 바람이 불 때마다 파도가 친다. 아내와 나는 그걸 ‘죽림(竹林) 파도’라고 부른다. 밤에 들어도 좋고, 새벽에 들어도 좋고, 낮에 들어도 좋다. 이곳에 와서 내게 새롭게 열린 건 하늘과 땅이다. 한편으론 감사하고, 한편으론 경이롭다. 박목월 시인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라고 노래했다. 예전부터 그 시를 참 좋아했다. 도시에 살면서 밤하늘에 불현듯 구름과 달이 보이면 ‘저걸 보고 그렇게 표현하셨나’ 싶었다. 그런데 여기에 오니까 알겠더라. 해발 560m 산골이다. 구름이 우리집 지붕 위로 간다. 이곳에 세찬 바람이 불면 구름이 달려간다. 그때 구름 대신 달을 보면, 달이 뛰어간다. 아, 그래서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구나. 이곳에 온 지 넉 달이 안됐는데, 구름에 달이 달려가는 걸 숱하게 봤다.”
이 목사는 산골에 내려와서 쓴 자작시를 한 편 보여주었다. 제목이 ‘바람’이었다. 그 시는 거창의 산골에서 산과 나무와 대숲 소리로 자신을 관통하며 쉼 없이 불어대는 ‘하나님의 숨결’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목사는 “내가 100주년기념교회 목회를 안 했거나, 은퇴 후에 합정동 살던 집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이렇게 하늘과 땅을 되찾는 인생의 마무리를 할 수 있었을까. 그걸 생각하면 참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삶이 ‘모래시계’라고 했다.

구상 시인이 이재철 목사에게 선물했던 십자가. 이 목사는 "이사할 때 예수님의 팔이 부러졌다. 그런데 붙이지 않고 일부러 바닥에 내려놓았다. 2차 대전 때 폭격 받은 독일 성당에 예수님의 한쪽 팔이 부러진 십자가 상이 있었다. 그 아래 팻말에는 '주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팔을 필요로 하십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이걸 볼 때마다 그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송봉근 기자

책장에 놓여 있던 태극 문양의 부채. 이해인 수녀가 이재철 목사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했다. 송봉근 기자
- 질의 :인생이 왜 ‘모래시계’인가.
- 응답 :“아날로그 시계는 초침과 분침, 시침이 동일한 시계판 위를 무한반복한다. 디지털 시계는 0부터 59까지 숫자가 무한반복된다. 그 속에서는 나의 지나간 날이 안 보인다. 내 나이와 상관없이 천년만년 살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영원히 살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모래시계는 다르다.”
- 질의 :어떻게 다른가.
- 응답 :“생김새부터 다르다. 삼각형 모양의 두 유리병이 역방향으로 맞물려 있다. 나는 1949년 4월에 태어났다. 한국 나이로 71세, 날수로 따지면 69년11개월을 살았다. 내 눈에는 보인다. 내 유리병에 69년11개월은 텅 비어 있다. 유리병의 윗부분에 남아 있는 모래의 양보다 빈 공간이 훨씬 더 크다. 그래서 내일 아침, 블라인드를 올려서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또 감격할 것이다. 내 모래시계의 윗부분에 또 하루의 모래가 남아 있구나. 시편 8편은 다윗이 쓴 시다. 다윗은 하늘과 땅에 가득 찬 아름다움과 주의 영광을 노래했다. 그리고 ‘사람이 무엇이기에 사람을 생각하시며’라고 묵상했다. 나는 ‘재철이가 무엇이기에 재철이를 생각하시며’라고 묵상한다. 그러니 바람이 분다고 문제겠나. 비가 내린다고 문제가 되겠나. 이 거대한 자연이 내게 삶에 대한 겸손과 삶에 대한 감격을 일깨워주고 있지 않나. 서울에서 계속 살았다면 맞지 못했을 날들, 상상하지 못했을 날들을 나는 오늘 하루도 맞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산을 내려오는 길, 이재철 목사의 자작시 '바람'을 꺼내 읽었다. 거기에는 '거침 없이 버려본' 이가 노래하는 버림 이후의 영성이 오롯이 흘렀다. 그것은 바람보다 거세고 , 바람보다 깊고, 바람보다 고요한, 그런 바람이었다.

이재철 목사는 "버려야 얻는다. 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차원으로 건너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날 하루에만 산골에는 비와 진눈깨비, 그리고 우박이 번갈아가며 내렸다. 송봉근 기자
거창 산골에서 쓴 이재철 목사의 자작시
바람
이재철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하고,
로트레아몽은
좌절과 절망을 노래했지
하지만 나는,
바람이 불지 않는 날에도
바람이 분다
그래서 오늘도 산다
바람,
내
생명의 근원
지혜의 숨결
(2019년 1월 11일)
[출처: 중앙일보] 퇴임 후 산골로 간 이재철 목사 "거침 없이 나를 버려달라"
사랑, 그 온전함
2019. 3. 18 (월요일) 사순절 제11일
사랑, 그 온전함
마태복음 5장 38~48절, / 220장 사랑하는 주님 앞에
예수님은 사랑의 온전함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가르침에 도전하셨습니다.
본래 이 가르침의 출처인 레위기 24장 20절 말씀은 과도한 보복을 금지하는 자비의 법이었고, 개인적인 보복이 아니라 재판관의 공정한 재판관 집행을 위한 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말씀하심으로서 레위기 24장 20절 말씀의 원형을 복원하시고 잘못된 성서인용과 해석과 적용에 철퇴를 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개인적으로 보복하지 않습니다.
오른편 뺨을 침으로서 왼편 뺨을 치는 것보다 더 크게 자신을 모욕하는 사람에게는 왼편 뺨도 돌려대고,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속옷보다 더 중요한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고, 강제부역을 시키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요구한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해 줍니다.
예수님은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가르침에 도전하셨습니다.
이 가르침의 출처인 레위기 19장 18절 말씀에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있지만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심으로서 레위기 19장 18절 말씀의 원형을 복원하시고 잘못된 성격인용과 해석과 적용에 철퇴를 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온전합니다.
하나님은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고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의 사랑 또한 온전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개인적으로 보복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물론 자기 원수도 사랑합니다.
자기 형제는 물론 자기 원수에게도 문안합니다.
사랑의 온전함을 추구하십시오.
2019년 3월 14일 목요일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기
2019. 3. 15 (금요일) 사순절 제9일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기
미태복음 5장 13~16절 / 502장 빛의 사자들이여
예수님의 역사적 목적은 하나님을 위한 ‘새 백성’을 불러내시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옛 백성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면모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불러내신 하나님의 새 백성 곧 천국 백성은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 백성의 표상과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선언하셨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천국 백성은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하고, 천국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과 반대되는 모든 것에 대항하고 그것들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의하면 천국백성은 세상의 소금이고 빛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밝히신 소금과 빛의 사명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세상과 근본적으로 달라야 하고 세상 속에 스며들어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세상을 바꾸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그리스인은 자신의 기독교적 특성을 유지해야 하고,
빛은 그 밝음을 유지해야 하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순응하기를 거부하고 우리의 기독교적 확신, 특별히 천국의 가치와 기준과 생활방식을 유지해야 합니다.
먼저 세상의 지도자들을 위한 기도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딤전2:1-2).
우리 이웃이 새로운 존재가 되도록 예수님의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고후5:17).
천국의 모델이 되고(마5:13-16),
하나님의 기준이 최선임을 논쟁하고 제안하고 책임 있는 시민이 될 수 있습니다.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은 변할 것입니다.
2019년 3월 13일 수요일
흑암에 앉은 자의 큰 빛
2019. 3. 14 (목요일) 사순절 제8일
흑암에 앉은 자의 큰 빛
미태복음 4장 12~23절 /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예수님은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고향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에 가서 사셨습니다.
표면적 이유는 적대 세력을 피하기 위함이었지만 실제적인 이유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하신 말씀대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의 빛이 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스블론과 납달리 지파는 기원전 732년경에 앗시리아인들에게 끌려갔습니다.
그 때 이래로 갈릴리 호수 인접 지역과 전체 갈릴리 땅에는 또한 수많은 이방인들이 이주해서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이방의 갈릴리 곧 ‘흑암에 덮인’ 변두리 지역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빛이 되시기 위해 가버나움에 가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흑암에 앉은 갈릴리 백성을 비추는 빛이셨습니다.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의 빛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면서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셨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 고통당하는 자, 귀신들린 자, 간질 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의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나아갈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십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모든 진리를 가르치시고 천국복음을 전파하십니다.
우리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우리 몸과 마음의 병을 고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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